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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오렌지를 연상 시키는 그런 빛깔의 비누는 언제 봐도 눈을 찌르는 것 같았다.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 크기도 지난달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고, 비누에서 뿜어져 나오는 귤과 레몬 계열의 향기도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그의 세계는 대부분 튀지 않는 쪽의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한두번 보는 걸로는 오롯이 기억하기 힘든 것들로.
머리도, 입는 옷도, 받거나 구매한 집안 곳곳의 가구나 식기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오롯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 몇몇은 그걸두고 '안전주의'라고 불렀다. 그에 대해 그는 동의하거나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면, 아마도 그런걸테니 말이다.
젖은 머리를 수건(어떤 행사에 갔을 때 판촉물로 받아왔다)으로 탈탈 말리던 그의 시선 끝에는 진한 오렌지색의 비누가 시야 끝에 걸려 있었다. 몇개월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1년 반 뒤 계약이 끝나는 집에서 이사를 갈 때가 되서야 정리하게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멈칫하게 했다. 지금이라도 버려야 하나. 하지만 만약, 정말 만약에 말이다. 혹시라도 저 비누에 안 좋은 기운이 섞여 있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밤바다 오렌지에 짓눌리는 꿈이라던가 비눗물을 연거푸 먹는 꿈을 꿔야 한다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욕실을 나서며 그는 결국 한가지를 타협하기로 한다. 색이라도 눈에 덜 띄게 비누망을 하나 구매해 그 안에 넣어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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